高麗末 杜門諸賢
조선 건국으로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거나 산야에 은거하여 이성계(李成桂)의 朝鮮에 충성하지 않고 순절(殉節)한 고려의 유신들(註 : 杜門諸臣은 모두 72인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한 명단은 없고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작성되었으나 변동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具 鴻(綾城) |
구 홍 |
號松隱 密直副使 |
고려가 망하자 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킴 |
吉仁迪(海平) |
길인적 |
|
두문동(杜門洞)에 숨어 살았음 |
吉 再(海平) |
길 재 |
號冶隱 諡忠節 |
두왕조를 섬길 수 없어 善山에서 후진 교육에 진력 |
金士廉(安東) |
김사렴 |
號梧隱 按廉使 |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모정리 陶山에 은거함 |
金先致(商山) |
김선치 |
武臣 密直副使 |
우왕4년 推忠保節贊化功臣 1382년에 상주로 은퇴함 |
金承吉(光山) |
김승길 |
號沙隱 咸從縣令 |
벼슬을 버리고 자취를 감춤 殉節하였다고 전함 |
金若時(光山) |
김약시 |
號陰村 直提學 |
조선이 건국되자 부인과 함께 廣州 陰村에 은거함 |
金自粹(慶州) |
김자수 |
號桑村 |
고려말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고향인 안동에 은거함 |
金子進(光山) |
김자진 |
號首山. 禁衛司正 |
고려가 망하자 나주(현 영암) 우정으로 은거함 |
金 濟(善山) |
김 제 |
號白巖 諡忠介 |
고려가 망하자 배를 타고 바다에 떠난 후 生死 不明 |
金震陽(慶州) |
김진양 |
號草廬 |
이성계를 제거하려다 실패 杖刑을 받고 유배되어 죽음 |
金忠漢(慶州) |
김충한 |
號樹隱 |
杜門洞에 들어갔다가 후에 湖南에 隱居함 |
南乙珍(宜寧) |
남을진 |
號沙川 門下府事 |
려말 정치가 문란하여 沙川에 隱居. 紺嶽山으로 옮김 |
都 膺(星州) |
도 응 |
號靑松堂 初名 兪 |
조선건국 후 洪州 老隱洞에 隱居 不事二君의 귀감이됨 |
孟 裕(新昌) |
맹 유 |
尙書 |
西杜門洞에 들어갔다가 불태울 때 殉節함 |
孟希道(新昌) |
맹희도 |
號東浦 典校副令 |
東杜門洞에 들어갔다가 한산에 隱居함. |
閔安富(驪興) |
민안부 |
字榮叔 號農隱 |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킴 |
朴 寧(文義) |
박 령 |
工曹判書 |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가 충절을 지킴 |
朴門壽(竹山) |
박문수 |
號松菴 諡忠顯 |
朝鮮開國 후 杜門洞에 들어가 고려신하로 절개를 지킴 |
朴 忱(密陽) |
박 침 |
典儀判事 |
杜門洞에 들어가 世上을 개탄하며 憂國의 세월을 보냄 |
裵尙志(興海) |
배상지 |
號柏竹堂 判事 |
정국의 변혁이 있을 것을 깨닫고 안동 金溪村에 隱居 |
范世東(錦城) |
범세동 |
號伏厓 諡文忠 |
고려가 망해감을 보고 萬壽山에 은거함 |
邊 肅(原州) |
변 숙 |
號慕麗堂 諡文節 |
고려가 망하자 不事二君의 忠節을 지켜 白川으로 落鄕 |
徐 甄(利川) |
서 견 |
號麗窩 掌令 |
망국의 신하로 衿川에 은거하며 절개를 지킴 |
徐 輔(利川) |
서 보 |
工曹典書 |
고려가 망하자 평산 적암(平山積巖)에 은둔(隱遁)함 |
徐仲輔(利川) |
서중보 |
號積巖 |
조선 開國에 不服 社門洞으로 들어가 自焚하여 죽음 |
成思齊(昌寧) |
성사제 |
諡貞節 直提學 |
李氏開國을 慨嘆하여 萬壽山에 들어가 杜門自淸함 |
成 溥(昌寧) |
성 부 |
號미산 成士達 子 |
고려가 망하자 杜門洞에 들어가 隱居 후 양주로 옮김 |
申德隣(高靈) |
신덕린 |
字不孤. 號醇隱 |
고려가 망한 뒤 光州에 隱居함. |
申 晏(平山) |
신 안 |
號黃衣翁. 隱居 |
고려가 망하자 平山 黃儀山에 들어가 隱居함 |
沈元符(靑松) |
심원부 |
號岳隱 典理判書 |
고려가 망하자 杜門洞에 들어가 節義를 지킴 |
元天錫(原州) |
원천석 |
號耘谷 |
치악산에 은거 태종이 자주 기용되었으나 응하지 않음 |
尹忠輔(茂松) |
윤충보 |
號麗江處士 |
安城郡事 朝鮮開國 후 驪州에 遯居함 |
李 瓊(河濱) |
이 경 |
號二憂堂 |
조선이 개국되자 동지 71인과 함께 杜門洞으로 들어감 |
李明誠(公州) |
이명성 |
號松隱 諡文成 |
조선 건국 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72현 |
李 穡(韓山) |
이 색 |
號牧隱 |
鄭道傳에 의해 유배당하고 移配 중 茂村驛에서 살해 |
李思之(碧珍) |
이사지 |
號麗隱亭 |
不事二君의 뜻을 지니고 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킴 |
李釋之(永川) |
이석지 |
號南谷 諡忠貞 |
不事二君한 節義의 표상인 杜門忠賢중의 한 분 |
李邃生(遂安) |
이수생 |
字明仲 號尊巖 |
高麗가 亡하자 遂安의 栗里에 隱居 |
李守仁(陽城) |
이수인 |
僉議評理 |
高麗가 망하자 杜門洞에 들어가 순절함 |
李崇仁(星州) |
이숭인 |
號陶隱 南平 杖殺 |
1392년 鄭夢周 일당으로 몰려 流配地 南平에서 杖殺됨 |
李陽昭(順天) |
이양소 |
號琴隱 諡淸華 |
朝鮮 建國 후 연천에 落鄕 현가리 도당골 숨어 지냄 |
李養中(廣州) |
이양중 |
號石灘 刑曹參議 |
조선 개국 후 은거, 절개를 지키다가 귀양살이를 함 |
李 裕(安城) |
이 유 |
兵部尙書 |
安城에 은퇴, 일생을 마침 |
李惟仁(安城) |
이유인 |
密直副使 |
조선 건국 후 頭流山排祿洞에 은거 |
李種學(韓山) |
이종학 |
號麟齋 牧隱 子 |
鄭道傳에 의해 유배당하고 移配 중 茂村驛에서 살해 |
林蘭秀(扶安) |
임난수 |
文僖公 工曹典書 |
麗末 不事二君이라 하여 연기 남면 양화리에 隱居함 |
林先味(平澤) |
임선미 |
號休庵 |
고려가 하자 은거하여 이성계의 부름에 불응함 |
林 騭(醴泉) |
임 즐 |
號城隱 郡守 |
고려가 망하자 不事二君의 정신으로 고향에서 隱遯 |
張安世(仁同) |
장안세 |
號松隱 諡忠貞 |
杜門洞에 들어가 고려조에 節義를 고수하며 生을 마침 |
田貴生(潭陽) |
전귀생 |
號耒隱 諡文惠 |
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절해고도로 들어가 자취를 감춤 |
田祖生(潭陽) |
전조생 |
號耕隱 諡文元 |
田貴生과 함께 절의를 지킨 麗末儒臣 |
全五倫(旌善) |
전오륜 |
字仲至 號採薇軒 |
杜門洞에 들어갔으나 本鄕安置 후 석방 瑞雲山에 隱居 |
鄭夢周(延日) |
정몽주 |
號圃隱 諡文忠 |
善竹橋에서 芳遠의 門客 趙英珪 등에게 繫殺 당함 |
鄭 溫(晉州) |
정 온 |
號隅谷 大司憲 |
杜門洞을 거쳐 智異山 청학동에 은거함 |
曺大運(昌寧) |
조대운 |
號山狂 門下侍中 |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杜門洞에서 自焚하였다 |
趙安卿(咸安) |
조안경 |
號孤竹齋 典書 |
조선 건국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은거함 |
曺義生(昌寧) |
조의생 |
號遠村 太學士 |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의 한 사람 |
趙承肅(咸安) |
조승숙 |
號德谷 諡文敬 |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후진양성에 전념 |
曺希直(昌寧) |
조희직 |
高麗朝提學 |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의 한 사람 |
車元頫(延安) |
차원부 |
號雲巖 諡文節 |
水雲巖洞에 은거 河崙이 보낸 자객에서 암살당함 |
蔡貴河(仁川) |
채귀하 |
號多義堂 典書 |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의 한 사람 |
蔡王澤(平康) |
채왕택 |
侍衛司領護軍 |
高麗가 亡하자 72현과 함께 杜門洞에 隱居함 |
崔文漢(江陵) |
최문한 |
號忠齋 |
杜門洞에서 고려에 대한 충의를 지키다가 강릉으로 옴 |
崔 瀁(全州) |
최 양 |
號藏六堂 諡忠翼 |
정몽주가 격살되자 진안군 백운 중대산에서 은거함 |
崔七夕(全州) |
최칠석 |
諡威靖 |
조선 건국후 벼슬을 버리고 전주로 내려가 은거함 |
河自宗(晉州) |
하자종 |
號木翁 |
여말의 형편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 벼슬을 사임 은거 |
韓哲沖(淸州) |
한철충 |
號夢溪 |
不二臣節로 尙州 白原山 隱居. 陝川龍州釣洞으로 移隱 |
許 徵(陽川) |
허 징 |
駙馬都尉 孔巖君 |
松岳洞 南峴에서 동지72인과 함께 不事二君을 결의함 |
未確認者 名單
宋 皎( ? ) |
송 교 |
號垂雲 |
확실한 기록이 없음. |
林 卓( ? ) |
임 탁 |
|
확실한 기록이 없음. |
程 廣(潭陽) |
정 광 |
|
확실한 기록이 없음. |
參 考 :
고려 유신 전오륜(全五倫),변귀수(邊貴遂), 김충한(金沖漢), 고천우(高天佑), 김위(金瑋), 이수생(李遂生), 신안(申晏) 등 칠현이 정선 서운산(瑞雲山)으로 내려와 산나물 등을 뜯어먹고 살면서 절개를 지킨 곳이 거칠현동이다.
당시 칠현은 한맺힌 마음을 한시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불렀는데, 지방의 선비들이 이를 듣고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알려주면서 구전되던 토착요(土着謠)가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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