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자이며 시인이시다. 만주 간도성(間島省) 화용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동생이시다.
만주의 간도성 용정가(龍井街) 공립홍중소학교(公立弘中小學校), 만주 광명(光明) 영신중학교(永信中學校)를 각각 졸업하고 만주에서 의과대학에 다녔다. 1945년 월남하여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공대 건축과에 입학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해군에 입대하여 시설장교로 근무하였으며, 군장교시절에는 시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문학예술(文學藝術-1955.6.)"에 시 (詩) "설조(雪朝)"로 등단하였다. 이어 "사상계(思想界-1959.1.)"에도 시를 발표, 사상계 출신 문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이어서 군제대 후 부산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한국근대건축사(韓國近代建築史)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하여 "1910년 이전의 부산의 양풍건축"과 "부산상품진열관(현 저금관리국)건축에 대한 사적고찰"이란 논문을 각각 발표하였다. 그의 연구업적 중 대표적인 "한국양식건축80년사"는 이즈음 발표된 것으로 이후 한국건축계의 가장 훌륭한 저서로 큰 영향을 계속 끼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건축인들이 현대건축을 향하여 앞을 다투던 시절 그는 깊은 사명감으로 한국의 근대건축역사를 수집, 정리하였다. 건축사에 대한 인식도 대부분 전통건축사에 한정되었고 도시는 현대화되고, 개화기 이후의 건축들은 대부분 무단철거되던 시기에 그는 한국근대건축뿐만 아니라 여명기(개화기-식민기)의 건축가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여 그들의 업적을 발굴해내었고, 특히 그들이 건축사에 끼친 영향을 부각시켰다. 또하나의 업적은 한국 현대건축의 연구에서도 나타나, 그의 한국 근,현대건축의 통사적(1880-1978) 체계가 갖추어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른 여러 논문이 뒷받침되어 후학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건축의장학, 색채학 연구에로 이어졌고, 영세적인 1970년대 건축출판계에서 훌륭한 번역서들을 내놓아 한국건축출판문화의 발판을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또한, 건축교육적 측면에서는 부산대학교(1960-1967), 동국대학교(1968-1971) 그리고 성균관대학교(1971-1985) 건축과에서 창립의 돌을 놓아 수많은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이 시대의 건축계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한국근대건축사연구"를 펴내었고, 또한 동시집 "민들레피리"가 출판되어 그의 업적을 기렸다
배위와 묘소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