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代言公派

대 003.

물텀벙 2010. 9. 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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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고 딸이 충혜왕(忠惠王)의 비(妃)가 되어 충목왕(忠穆王)을 낳았다.

 고려 충숙왕 8년(1339년 己卯) 왕이 계종(繼宗)께 명하여 마시(馬市)를 금하였다고 東國通鑑에 기록되어있다.

 高麗史에 忠穆王 2년(1346년 丙戌) 9월 갑자일에 贊成事 尹繼宗 卒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배위는 驪興閔氏이시며 父는 驪興君 적(頔)이며 祖는 贊成事 종유(宗儒)이시다.

계보 : 9 復元 - 10 純 - 11 珤 - 12 繼宗 - 13 仁貴

 

윤계종(尹繼宗)에 대하여

 충혜왕비 희비(禧妃)의 아버지이고, 충정왕의 외할아버지이다. 충혜왕이 재즉위(重祚,1339년)하여 충숙왕비인 경화공주(慶華公主) 백안홀도(伯顔忽都)를 능욕하는 일이 벌어져 경화공주가 원나라로 돌아가고자 말을 사려고 할 때, 충혜왕이 윤계종으로 하여금 마시(馬市)를 금하게 하여 말을 팔지 못하게 한 점으로 보아 충혜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충목왕대에 들어와서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어 규찰(糾察)을 강화할 때, 김규(金규)가 양광도안렴(楊廣道按廉)이 되어 윤계종이 이문(理問: 征東行中書省理問所의 우두머리이며 정4품의 벼슬)으로 공전(公田)을 뇌물로 받은 것을 적발하였으나 녹사(錄事) 안길상(安吉祥)이 윤계종의 옛 은혜를 생각하고 위에 보고하지 않았다가 내쫓긴 바 있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충혜·충목 두 왕대에 걸쳐 고려정계에 있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벼슬이 찬성사에 이르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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