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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강씨(信川康氏 ? - 1597)는 파평윤씨 22세 字 大溶 우부장(右部將) 윤 해(尹 海 : 1541 - 1597)의 처이다. 정유재란때 집안 사람들은 모두 왜적을 막으러 출전하였는데, 부군인 윤해는 이때 병을 얻어 고향에서 치료 중이었었다. 그런데 왜병이 해보면 상곡리까지 침입하게 되자 신천강씨와 윤해는 이들의 갖은 악행을 피하고자 지금의 상곡 화수산(花樹山)으로 피란하다 왜적에게 발각이 되어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다. 이에 강씨부인은 겁에 질려 궁리끝에 은쟁반과 비단 2필을 손에 들어보이며 목숨만을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였으므로 간신히 그 죽음의 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강씨부인과 윤해는 또 다시 왜적에게 발각되었고, 왜적의 칼날이 남편 윤해를 내리 치려고 하자 강씨부인이 두 팔로서 막고자 하였으나 이내 그녀의 양 팔은 그 칼날에 잘려 떨어지고 남편 윤해 또한 왜적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후에 강씨부인의 열행(烈行)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12년(순조 12)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정원용(鄭元容)의 기문(記文)을 받아 열려각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 윤성립(尹誠立)은 부모의 순절을 복수(復讎)하기 위하여 전쟁터에 나갔다가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강씨 부인의 아드님에는 윤성립(尹誠立), 윤정립(尹挺立) 두 분이 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