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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성박(聖博), 동휴(東休)의 아드님이시다. 1784년(정조 8) 진사(進士)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86년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되었다. 1788년 교리(校理)로 김사목(金思穆), 정언형(鄭彦衡)의 잘못을 논박하다가 파직, 이듬해 복직하여 장릉지(莊陵誌)의 찬수(撰修)에 참여했다. 이어 수찬(修撰)이 되어 천주교의 배척을 상소, 서학(西學) 서적을 소각(燒却)케 했다. 그후 승지(承旨)를 거쳐 1799년 예조참의,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고 이듬해 필선(弼善)에 전직, 1802년 이조참판, 정조실록찬수당상,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다. 뒤에 1803년 공조 판서를 거쳐 1804년 예조판서, 악기조성당상(樂器造成堂上), 한성부판윤이 된 뒤 대사헌이 되었으나 1개월 뒤 조참에 불참하여 파직 당하였다. 이듬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상호군(上護軍)을 지내고 5월에 별세하셨다. 시호는 효헌(孝憲)이시다. 배위는 羅州林氏이시며 직호(直浩)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함열 월명동 유원에 모셨다. 정조(正祖)8년(1784년), 정시(庭試) 병과5(丙科5). 字 성박(聖博).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