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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회보(晦甫), 號는 천서(泉西). 동명(東鳴)의 아들이다. 1707년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 들어가 大學의 의의(疑義)를 논하니 권상하로부터 그의 학문이 높음을 인정받았다. 그뒤 신경(申敬), 한원진(韓元震), 현상벽(玄尙璧)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덕행을 닦다가 1709년 이들과 함께 권상하를 따라 화양동에 들어가 만동묘(萬東廟) 건립에 참여하였다. 1714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를 받아 1719년에는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되기도 하였다. 이해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정언, 지평에 이르렀다. 배위는 漢陽趙氏이시며 縣監 성한(晟漢)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淸州 二西面 才積里 峴幕洞 庚原에 모셨으며 配墓는 酉原이다. 屛溪 尹鳳九의 撰碣이 있다. 숙종(肅宗)45년(1719년), 별시(別試) 을과2(乙科2) 숙종(肅宗) 40년 (1714) 갑오(甲午)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3등(三等) 23위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