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版圖公派

판 003.

물텀벙 2010. 9. 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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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字는 미중(美仲), 號는 기천(岐川), 충좌위(忠佐衛) 상호군(上護軍) 대노(大老)의 아드님이시다.

 1589년(선조2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1596년(선조29) 甲申庭試 丙科로 급제 주서(注書), 예조좌랑(禮曹佐郞)·지평(持平)·공조정랑(工曹正郞)을 거쳐 1605년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 1610년(광해군 2) 죽주부사(竹州府使), 이어 분승지(分承旨)·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를 역임했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의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여 파직, 양근(楊根)에 은거하였다.

 1621년 접반사(接伴使)로서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모문룡(毛文龍)을 맞으러 가도(椵島)에 갔다.

 1623년 해주 목사(海州牧使)가 되었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평정에 종군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세자(世子)를 시종하여 완산(完山)으로 피난했고,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판결사(判決事)로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갔다. 이듬해 병조참의(兵曹參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고 도총부도총관(都摠府都摠管), 1645년 공조참판(工曹參判) 등을 역임 자헌대부(資憲大夫),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656년 90세가 되어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공조 판서가 되고, 1660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희(靖僖)이시다.

 배위는 全州李氏이시며 효원(孝元)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積城 紺岳山 北麓 長坪 巳原에 合葬으로 모셨으며 判書 李縡의 撰碑가 있다.

 선조(宣祖)29년(1596년), 정시(庭試) 병과10(丙科10).  자(字) 미중(美仲).  호(號) 기천(岐川).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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