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版圖公派

판 090.

물텀벙 2010. 9. 5. 17:01

 

 

 

 판 090.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字는 언평(彦平)으로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지임(之任)의 아들이다.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이라고 하나 확인이 불가하다. 조선 중기 소윤파(小尹派)의 영수이다.

 중종 23년(1528)에 생원시, 1533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史官)에 뽑혔으나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수찬(修撰)이 되고 중종 34년(1539) 교리 겸 시독관(侍讀官)에 이어 지평. 응교를 역임, 이 해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에 좌부승지. 좌승지. 공조 참의를 역임하던 중 1544년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대윤파(大尹派)의 탄핵으로 삭탈관직되었다. 재위 8개월 만에 인종이 죽고 명종(明宗)이 즉위하고 문정왕후의 수렴청정(垂廉聽政)이 시작되면서 예조 참의에 복직, 공조 참판에 올랐다. 인종의 외숙 윤임(尹任). 유관(柳灌). 유인숙(柳仁淑) 등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여 그 공으로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이 되었다가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으로 개봉(改封)되어 서원군(瑞原君)에 봉해졌다.

 1546년 친형인 윤원로(尹元老)와 권세()를 다투어 유배시며 세력을 굳히고 이듬해에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壁書事件)을 계기로 대윤파 잔당을 모두 숙청하였다. 이어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중종실록(中宗實錄) 인종실록(仁宗實錄) 편찬에 참여하다.

 1548년에 이조 판서, 1551년에 우의정 겸 이조 판서에 오르고 1560년 서원부원군()에 진봉되었다.

 1563년 영의정에 올라 정권을 전횡하다가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강음(江陰)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배위는 延安金氏이신데 遂黜하고 妾 鄭蘭貞을 정실로 하였다.

  중종(中宗)28년(1533년), 별시(別試) 을과2(乙科2)

계보 :

 

 

'파평윤씨 인물 > 版圖公派'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 092.  (0) 2010.09.05
판 091.  (0) 2010.09.05
판 089.  (0) 2010.09.05
판 088.  (0) 2010.09.05
판 087.  (0) 2010.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