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未詳 派

미 004.

물텀벙 2010. 9. 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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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문신이시다, 복야공(諱 金剛)의 아들이며 문숙공(諱 瓘)의 아버지이시다.

  공의 직함은 상서성 우복야(尙書省 右僕射)이시고 산소는 황해도 延安 紫達洞 子坐 乙原이신데 실전했다가 純祖 7년(1807) 丁卯年에 28세 군수(郡守) 윤광부(尹光孚 1743~壽 72)가 평산(平山)에 살고 계시던  宗人(종인)들의 말씀을 듣고 승지 윤 함(尹 涵), 감역 윤 직(尹 稙), 진사 윤경진(尹景鎭) 윤 각(尹 殼)을 보내 자달동 최씨(崔氏)의 서당 뒤를 파 보게 하여서 문정공의 비석이 나왔으므로 29세 참판공(參判公) 윤상규(尹尙圭 1768~ ? 字周瑞 -昭靖公派)가 30세 영원군(鈴原君) 윤행직(尹行直 1760~1838 字溫叟 -昭靖公派)과 상의하여 연백군수에게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최씨들도 大姓巨族(대성거족)이고 세력도 있는 씨족들이어서 여러해를 끌어오다가 9년만인 1816年 丙子 4月에 30세 영원군(鈴原君) 尹行直과 참판(參判) 尹尙圭가 내려가서 황해도 감사 이면승에게 말씀해서 관력을 빌고 당시 고을 수령으로 계시던 28세 윤광심(尹光心 1751~1817 字敬夫 號剰民 -昭靖公派)이 엄한 형벌로 다스려 최씨의 산소를 이장(移葬)해버리고 문정공 산소(文靖公 山所)를 개봉축하였으나 우리 산소 위로 있는 최씨의 조상 희천공의 산소는 그 종손이 현장에서 자살하였기 때문에 파지 못했다.

 配位(배위)는 慶州 金氏이시다.

 비문은 영원군(鈴原君) 尹行直이 짓고 참판(參判) 尹尙圭가 썼다. 묘지는 31세 영풍군(鈴豊君) 윤 찬(尹 禾+贊 - 鈴原君의 子)이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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