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독도를 놓고 두 나라가 싸우는 이유(http://blog.daum.net/2losaria/15946711)를 포스팅했을 때 어느 이웃님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구체적 증거도 올려 주면 안될까요?"
오늘은 그 이웃님 청대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구체적 증거를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독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독도'라는 이름의 변천사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름이 바뀌는 것은 다 그만한 사연이(역사) 담겨 있기 때문이다.
6세기 초 해상왕국 우산국이 신라에 소속되면서 우산국은 울릉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울릉도에 딸린 섬 독도는 '우산'이 된다.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등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면 동해에 우산도와 무릉도가 있는데 우산도는 독도를, 무릉도는 울릉도를 가르킨다.
조선 성종 임금 시대에는 독도를 '삼봉도'라고 불렀다. 독도가 세 개의 봉우리로 보였기 때문.
정조 때는 가지도라고 불렀다. 가제(강치)가 많은 섬이라는 뜻으로 부른 이름.
고종 임금은 1900년 울릉도의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 및 석도로 정했다. 석도는 지금의 독도를 가리킨다.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독도'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다.
그런데 이 '독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첫 번째 기록은 어디일까?
참으로 묘한 일이다. 우리나라에 보관된 문서가 아니라 일본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는 것이.
독도라는 이름은 일본 군함인 '신고호' 항해일지에 처음 나온다.(1904년)
우산도(512년) ---> 삼봉도(1471년) ---> 가지도(1794년) --->석도(1900년) ---> 독도(1906년)
현재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처음부터 그리 불렀던 것은 아니다.
옛날에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19세기 초반 일본의 상인 다케시마 이치가쿠가 러시아를 다녀오다
울릉도를 발견했다. 그는 울릉도를 무인도라고 생각하고 제멋대로 '송도'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
'송도 개척 의견서'를 올렸다. 또 시마네 현 출신의 한 사무라이는 '죽도 도해 지원' 서류를 올렸다. 그들은 울릉도의 울
창한 숲을 벌목해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가 죽도라고 했던 섬 역시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였다.
독도는 나무가 많은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일본은 곧바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송도가 조선 땅이며 죽도(독도)는 그저 돌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일본 정부는 이 두 섬이 일본 땅이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은 일이 있었다.
조선 정부가 이 일을 일본 외무성에 항의했을 때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를 헷갈리고 있었다. 섬은 하나인데 이름이 두 개
인지 섬은 두 개인데 같은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일본은 부랴부랴 조사를 하여 자신들이 그 동안 송도라 불렀던 섬은 조선의 울릉도이며 죽도라 불렀던 섬은 바로 옆의 작은
섬 독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가 자신들의 영토 바깥'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자신의 조상들이 만든 이 문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 둘레 바다에 일본인들이 자꾸 들어오자 대한 제국시대에 우리 정부는 독도를 울릉군에 포함시켰다.
그때까지 독도는 무인도라는 이유로 행정 구역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와 석도를 관할하사..."
여기에서 죽도는 울릉도 근처에 있는 현재의 죽서도를 말한다. 석도는 돌섬, 즉 독도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은 '석도'가 울릉도 둘레에 있는 암초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독도'는 '돌이 많은 섬'이라는 뜻인데 왜 '돌섬'이 아니고 '독섬(독도)'이 되었을까?
당시 울릉도에 살던 주민 중 80% 이상이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방말로 '돌섬'을 '독도'라고 부른 것이다.
전라도는 '돌'을 '독'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독도'는 전라도 사투리인 셈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중요한 자료들
1. 도해 금지 경고판
일본 시마네현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839년 만들어진 이 경고판에는 하지 우에몬이라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
독도에 간 일로 처형되었다고 씌어 있다. 일본이 독도에 건너간 사람을 처형까지 할 정도로 엄격하게 다스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2. 삼국 접양지도
1785년에 일본의 지리학자 하야시가 그린 <삼국접양지도>에는 동해를 '조선해(朝鮮海)'라고 썼고 울릉도를 '죽도'라고
썼다. 울릉도 오른쪽에는 작은 섬을 그려 넣어 독도를 표시했다. 두 섬 모두 조선 땅과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3. 일본 막부 공식지도
본방서북변경약도(本邦西北邊境略圖)라는 이름의 이 지도는 1835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지도 제작 및 기후 조사 책임자
인 천문방 야스다 라이슈가 제작한 일본의 공식 지도.
* 참고자료 : 강치야 독도야 동해바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