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신묘표 유명조선 증좌찬성행홍문관응교윤공극신지묘 정경부인고성남씨부좌 공은
이름은 극신, 자는 백수이시고, 계대는 남원백 윤공 이름이 위이신 분에게 댄다. 여러 번 전하여 관찰사를 지내고 이름이 임이란 분에 이르러서는
청백으로 이름을 내셨으니, 이 분은 바로 공의 5세조이시다. 조부는 이름이 시영인데, 사간을 지내고 예조참판에 추증되셨으며, 아버지는 이름이
징인데, 영의정에 추증되셨으며, 어머니는 초계변씨로 종범의 따님이셨다. 공은 소시에 진사시에 합격하시고, 문음으로 참봉에 임명되셨으며,
만력 병자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괴원에 예속되었다가 추천을 받아 사국에 들어가서 검열이 되셨고, 이어서 정언, 지평, 이조좌랑으로
승진되셨으며, 중간에 임천군수로 나가기도 하셨다. 고성남씨 곧 교관을 지낸 견손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2남을 낳으셨으니, 맏아들은 엽으로
교리를 지내고 도승지에 추증되셨으며, 막내는 돈으로 공조 판서를 지내고 시호는 효정이셨다. 효정공이 이렇게 귀하게 된 덕분으로 공에게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경연 춘추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성균관사 세자이사가 추증되었다. 응교를 지낸 형언과 현감을 지낸
조찬과 응교를 지낸 윤계선은 교리공의 아들과 사위이고, 찰방을 지낸 형준과 좌랑을 지낸 형철과 관찰사를 지낸 홍득일과 참의를 지낸 윤선도와
황흡과 이희안은 판서공의 아들과 사위이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다 기록할 수가 없다. 묘소는 광주 월천 경좌의 언덕에 있는데, 부인이
부장되셨다. 공은 가정 정해년 11월 5일에 태어나시고, 만력 정해년 8월 19일에 작고하시니, 향년은 겨우 61세이셨다. 조정에서 벼슬하실
때의 행적 중에는 반드시 자손의 사법이 될 만한 것이 있을 터인데, 증빙할 문헌이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8대손 좌승지 행임은 묘표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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