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 호란(外勢 胡亂)
외세 호란(外勢 胡亂) -後金(뒤에 淸)-
※ 심하(深河)싸움(광해조)
후금(後金 : 뒤 淸으로 됨)의 건국초에 明나라의 요청으로 심하(深河:요동지방)에 출정하여 싸우다가 순절한 인물들. | |||||
윤 득(尹 得) |
계 강(桂 江) |
김요경(金堯卿) |
김응하(金應河) |
김좌룡(金佐龍) |
김철현(金鐵賢) |
송덕일(宋德馹) |
신몽헌(申夢憲) |
신홍수(申弘壽) |
오 직(吳 稷) |
이계종(李繼宗) |
이유길(李有吉) |
※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인조 5) 만주에 본거를 둔 후금(後金:淸)의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후금 사이의 싸움에서 순절한 인물들. | ||||
권이길(權頤吉) |
기 협(奇 協) |
김상안(金尙安) |
김성형(金聲逈) |
김시약(金時若) |
김양언(金良彦) |
김정남(金井男) |
김 준(金 浚) |
김태암(金泰巖) |
남이흥(南以興) |
독고입(獨孤立) |
박명룡(朴命龍) |
백원의(白元義) |
송덕영(宋德英) |
송도남(宋圖南) |
윤 혜(尹 惠) |
이 완(李 莞) |
이희건(李希建) |
장 돈(張 暾) |
전상의(全尙毅) |
정봉수(鄭鳳壽) |
최몽량(崔夢亮) |
한덕문(韓德文) |
한춘립(韓春立) |
|
※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에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제2차 침입으로 발발하였다.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 순절한 인물들. | ||||
윤 계(尹 棨) |
윤 집(尹 集) |
윤여임(尹汝任) |
윤 원(尹 瑗) |
윤신득(尹信得) |
윤제안(尹齊顔) |
윤몽서(尹夢瑞) |
윤 전(尹 烇) |
윤충우(尹忠祐) |
윤현립(尹顯立) |
강위빙(姜渭聘) |
강흥업(姜興業) |
고의겸(高義謙) |
구일원(具一元) |
권순장(權順長) |
김득남(金得男) |
김 서(金 敍) |
황일호(黃一晧) |
김수남(金秀南) |
김 언(金 琂) |
김익겸(金益兼) |
김홍익(金弘翼) |
남무성(南武星) |
민 성(閔 垶) |
민 영(閔 栐) |
민 지(閔 之) |
민지익(閔之釴) |
민지침(閔之針) |
박 준(朴 駿) |
배명순(裵命純) |
서언길(徐彦吉) |
선세강(宣世綱) |
송시영(宋時榮) |
송 심(宋 諶) |
송영춘(宋榮春) |
송 침(宋 沉) |
송해수(宋海壽) |
신성립(申誠立) |
신 오(申 澳) |
신천남(申天男) |
심 숙(沈 諔) |
심자광(沈自光) |
심 현(沈 誢) |
안극성(安克誠) |
안몽상(安夢祥) |
오달제(吳達濟) |
유 질(柳 秩) |
윤 성(尹 城) |
이가상(李嘉相) |
이경선(李慶善) |
이광원(李光遠) |
이국화(李菊華) |
이돈서(李惇敍) |
이돈오(李惇五) |
이부후(李副後) |
이사규(李士珪) |
이 참(李 參) |
이상길(李尙吉) |
이상규(李尙揆) |
이상급(李尙汲) |
이상재(李尙載) |
이세영(李世寧) |
이시직(李時稷) |
이 영(李 翎) |
이원규(李元揆) |
이원길(李元吉) |
이의배(李義培) |
이중규(李重揆) |
이행진(李行進) |
지여해(池汝海) |
진구주(陳九疇) |
장후건(張厚健) |
정백형(鄭百亨) |
정세규(鄭世規) |
정 수(鄭 洙) |
정재신(鄭再新) |
정효성(鄭孝誠) |
조정익(趙廷翼) |
차명세(車命世) |
차예양(車禮亮) |
최진입(崔震立) |
한진영(韓震英) |
허 노(許 輅) |
허 완(許 完) |
홍익한(洪翼漢) |
홍명구(洪命耉) |
홍명형(洪命亨) |
홍처약(洪處約) |
황대곤(黃大坤) |
황선신(黃善身) |
김상용(金尙容)追 |
|
|
|
|
※ 정축 척화신(丁丑 斥和臣)
병자호란 때에, 중국 청나라와 화친하는 것을 배척하던 신하 | ||||
윤 황(尹 煌) |
윤문거(尹文擧) |
윤지경(尹知敬) |
윤형지(尹衡志) |
김상헌(金尙憲) |
김수익(金守翼) |
김수현(金壽賢) |
김익제(金益濟) |
김익희(金益熙) |
나덕헌(羅德憲) |
신 상(申 恦) |
신익성(申翊聖) |
심광수(沈光洙) |
안 경(安 璥) |
안방준(安邦俊) |
양진반(梁震潘) |
유 계(兪 棨) |
유백증(兪伯曾) |
유 황(兪 榥) |
이경여(李敬與) |
이경증(李景曾) |
이 광(李 珖) |
이명웅(李命雄) |
이 목(李 楘) |
이 보(李 俌) |
이상질(李尙質) |
이순민(李舜民) |
이 엽(李 曄) |
이일상(李一相) |
이지항(李之恒) |
이척연(李惕然) |
이행우(李行遇) |
이 확(李 廓) |
이흥발(李興勃) |
임경업(林慶業) |
정뢰경(鄭雷卿) |
정 온(鄭 蘊) |
조한영(曺漢英) |
채이항(蔡以恒) |
최효일(崔孝一) |
표연준(表延俊) |
홍 록(洪 琭) |
홍 탁(洪 琢) |
|
|
※ 척화론자(斥和論者) 삼학사(三學士)
병자호란 때 중국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한 세 사람의 학사. 이들은 모두 청나라에 붙잡혀 갔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살해되었다 |
윤 집(尹 集 :坡平) 1606-1637) : 字成伯. 號林溪. 校理. 追贈領議政. 諡忠貞. |
오달제(吳達濟 :海州) 1609-1637) : 字季輝. 號秋潭. 副校理. 追贈領議政. 諡忠烈. |
홍익한(洪翼漢 :南陽) 1586-1637) : 字伯升. 號花浦, 雲翁. 平壤府庶尹. 追贈領議政. 諡忠正. |
김익희(金益熙 : 光山) 1610-1656) : 字仲文. 號滄洲, 大提學. 諡文貞. |
※ 강화성(江華城) 함락 때 순절부녀(殉節婦女)
江都(지금의 江華島)가 함락될 때 순절한 부녀.
| |
윤선거(尹宣擧-坡平) 妻 李氏.(漢城公派 24세) |
윤득립(尹得立-坡平) 妻 廉氏.(太尉公派 28세) |
士人 劉仁立의 妻 宋氏 |
驛官 鄭愼男 小女 |
靈川君 李 侹 妾 金氏 |
祥原君 李世寧 妻 曺氏 |
珍原君 李世完 妻 韓氏 |
李尙揆 妻 權氏. |
鄭百昌 妻 韓氏 |
李一相 妻 李氏 |
李 翎 妻 吳氏 |
韓五相 妻 李氏 |
李春男 妻 鄭氏 |
權順長 妻 李氏 |
李聖求 妻 權氏 |
閔 垶 妾과 4女 |
鄭孝誠 妾 某氏 |
閔之釛 妻 金氏 |
閔之釴 妻 柳氏 |
李惇五 妻 金氏 |
李馨秀 家 婦女 4人 |
沈 誢 妻 宋氏 |
申 蔓의 母 韓氏와 妻 洪氏 |
私奴 金希大 妻 大淑 |
鄭善興 妻 權氏 |
金 瑬 妻 柳氏 |
權順昌 妻 張氏. 同 妾 申氏 |
權順正 妻 張氏 |
金慶徵 妻 朴氏 |
金震標 妻 鄭氏 |
洪命一 妻 李氏. 同 妾 權氏 |
朴世相 妻 羅氏 |
李廷龜 妻 權氏 |
韓興一 妻 吳氏 |
呂爾徵 妻 韓氏 |
李好閔 妻 某氏 |
金 槃 妻 徐氏 |
沈廷誠 妻 某氏 |
崔 弼 妻 鄭氏 |
卞 慶 妻 李氏 |
李仲言 妻 梁氏 |
河 艗 妻 李氏 |
李嗣聖 妻 李氏 |
黃 탁 妻 崔氏 |
金繼門 妻 朴氏 |
具 翓 妻 金氏 |
南宮 薰 妻 文氏 |
張紳母 妻 朴氏 |
安善道 妻 徐氏 |
僉知 崔得男 妻 朴氏 |
曺獻民 妻 禮環 |
李昭漢 妻 李氏 |
潘日良 妻 車氏 |
府院君 韓浚謙 妾 某氏 |
士人 李如善 妻 韓氏 |
韓景文 妻 某氏 |
參奉 黃 寔 妻 具氏 |
武擧 韓忠男 妻 某氏 |
主簿 安應星 妻 李氏 |
進士 李成震 妻 某氏 |
安 順 妻 柳氏 |
都事 金 嬃 妻 某氏 |
水軍 洪靖云 妻 良. 女 末叱 |
私奴儉同 妻 分介 |
內婢 愛還 |
士人 沈之湛 |
內婢 古溫介 |
|
※ 정축 심양 배종신(丁丑 瀋陽 陪從臣)
丙子胡亂 後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인질로 심양(瀋陽)에 볼모로 갈 때 따라간 사람들. | |
봉림대군(鳳林大君 : 淏) : 孝宗 |
강문명(姜文明 :衿川) : 洗馬. |
구 오(具 鏊 :綾城) : 宣傳官. |
남이웅(南以雄 :宜寧) : 號市北. 諡文貞. 左議政 |
민응협(閔應協 :驪興) : 字寅甫. 號明皐. 弼善. |
박 황(朴 潢 :羅州) : 號懦軒. 懦翁. 吏曹參議 |
변 유(邊 宥 :原州) : 字汝寬. 宣傳官. |
박 노(朴 魯 :密陽) : 號大瓠. 兵曹參判 |
서택리(徐澤履 :達城) : 子汝靜. 翊衛. |
이명웅(李命雄 :完山) : 號松沙.完陽君.禮曹參議 |
이시해(李時楷 :完山) : 字子範. 號松崖. 弼善. |
이 회(李 檜 :延安) : 字子方. 號雙溪. 司書. |
정뢰경(鄭雷卿 :溫陽) : 字震伯. 號雲川. 文學. |
허 억(許 檍 :陽川) : 字春老. 號杜谷. 司禦. |
※ 배종팔장사(陪從八壯士)
병자호란 후 1637년(인조 15) 인질로 잡혀간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배종한 8명의 무사(武士). | |||
김지웅(金志雄) |
박기성(朴起星) |
박배원(朴培元) |
신진익(申晉翼) |
오효성(吳孝誠) |
장사민(張士敏) |
장애성(張愛聲) |
조 양(趙 壤) |
※ 굴욕적인 청(淸)과의 강화조약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은 조선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우선 인조(仁祖)가 친히 성 밖으로 나와 항복하되 다음과 같은 강화조약 조항을 제시하였다. |
① 청나라에게 군신(君臣)의 예(禮)를 지킬 것 |
② 명나라의 연호를 폐하고 관계를 끊으며,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誥命), 책인(册印)을 내놓을 것 |
③ 조선 왕의 장자(長子). 제2자(第2子) 및 여러 대신의 자제를 선양에 인질로 보낼 것 |
④ 성절(聖節:중국황제의 생일), 정조(正朝), 동지(冬至), 천추(千秋:중국 황후·황태자의 생일), 경조(慶弔) 등의 사절(使節)은 명나라 예에 따를 것 |
⑤ 명나라를 칠 때 출병(出兵)을 요구하면 어기지 말 것 |
⑥ 청나라 군이 돌아갈 때 병선(兵船) 50척을 보낼 것 |
⑦ 내외 제신(諸臣)과 혼연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할 것 |
⑧ 성(城)을 신축하거나 성벽을 수축하지 말 것 |
⑨ 기묘년(己卯年:1639)부터 일정한 세폐(歲幣)를 보낼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