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바다
실어다 뿌리는 바람조차
시원타.
솔나무 가지마다 샛춤히 고개를 돌리어 뻐들어지고 밀치고 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 씻고 구보로. 바다는 자꼬 섧어진다. 갈매기의
노래에......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돌아가는 오늘의 바다여!
42.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43. 반딧불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뭄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
주우러 숲으로 가자.
44. 밤
오양간 당나귀 아-ㅇ 외마디
울음울고
당나귀 소리에 으-아 아 애기 소스라쳐 깨고
등잔에 불을 다오.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한키 담아 주고
어머니는 애기에게 젖을 한모금 먹이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드오.
45.
버선본
어머니 누나 쓰다 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가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버선본
만드는걸.
어머니 내가 쓰다 버린 몽당연필은 두었다가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천 우에다 버선본
놓고 침 발러 점을 찍곤 내 버선 만드는걸.
46.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 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 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 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47. 별똥 떨어진
데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배태되고 이 어둠에서 생장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 속에서 그대로 생존하나 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기는 나는 세기의 초점인 듯 초췌하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내 바닥을
반듯이 받들어주는 것도 없는 듯하다마는 내막은 그렇지도 않다. 나는 도무지 자유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없는 듯 있는
하루살이처럼 허공에 부유하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하루살이처럼 경쾌하다면 마침 다행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구나!
48. 병아리
뾰뾰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꺽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속으로 다 들어
갔지요.
49.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 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50. 봄
1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 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51. 봄
2
우리 애기는 아래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52. 비 오는
밤
솨! 철썩! 파도소리 문살에 부서져 잠 살포시
꿈이 흩어진다. 잠은 한낱 검은 고래 떼처럼 설레어 달랠 아무런 재주도 없다.
불을 밝혀 잠옷을 정성스레
여미는 삼경. 念願. 동경의 땅 강남에 또 홍수질것만 싶어 바다의 향수보다 더 호젓해진다.
53.
비둘기
안아보고 싶게 귀여운 산비둘기 일곱
마리
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공일날 아침에 벼를 거두어 빤빤한 논에 앞을 다투어 모이를 주으며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오
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두 마리가 나오 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오.
54.
비로봉
만상을 굽어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자락이 칩다.
55.
비애
호젓한 세기(세기)의 달을 따라 알 듯 모를
듯한 데로 거닐고저!
아닌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쳐
끝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심사는
외로우려니
아--- 이 젊은이는 피라밋처럼 슬프구나.
56.
비행기
머리에 프로펠러가 연자간
풍체보다 더..... 빨리 돈다.
따에서 오를 때보다 하늘에 높이 떠서는 빠르지 못하다 숨결이 찬
모앙이야.
비행기는..... 새처럼 나래를 펄럭거리지 못한다. 그리고 늘..... 소리를 지른다. 숨이
찬가봐.
57.
빗자루
요오리 조리 베면 저고리 되고 이이렇게 베면 큰
총 되지.
누나하고 나하고 가위로 종이 쏠았더니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누나 하나 나 하나 엉덩이를
때렸소
방바닥이 어지럽다고..... 아아니 아니 고놈의 빗자루가 방바닥 쓸기 싫으니 그랬지
그랬어
괘씸하여 벽장 속에 감췄드니 이튿날 아침 빗자루가 없다고 어머니가 야단이지요.
58.
빨래
빨래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7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59.
사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셋이서
껍질 채로 송치까지 다아 나눠 먹었소.
60.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