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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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公의 아버지는 興威衛主簿 希甫이시고 祖父는 咸安伯 敦이시다.

 公은 고려 忠肅王 元年 甲寅(1314년)에 左思輔 벼슬에 계셨다. 당시 중들이 속인이 되어 벼슬자리에 많이 오르게 되므로 公과 右思輔 우탁(禹倬), 右獻納 이목(李穆)이 서고신상(署告身上)을 즐겨하지 않으니까 왕이 노하여 巡軍에 가두었다가 석방하였다. 曹溪僧인 경린(景麟)과 경총(景聰)이 모두 왕의 총애를 받아 대궐에 출입을 하면서 大禪師가 되매 諫官들이 좋지않게 여겨 서고신상을 하지 않은즉 왕이 또한 크게 노하여 獻納인 이조은(李朝隱)과 사보 우탁(禹倬)과 윤기(尹)를 불러 책망하고 또한 李朝隱 등을 불러 그 사유를 캐묻고 刑杖을 하려 하였던바 우탁 등이 애타는 마음으로 왕에게 아뢴 즉 왕의 노여움이 조금 풀려서 公을 좌천시켜 직사관(直史館)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삼았다.

 公이 咸安의 고향에 돌아와 살으면서 지은 시가 있으니「草沒垣墻一逕微 門前桑자目依依 相逢盡說當時年 淸淚 無端滿客衣(풀은 담장을 덮어 길이 희미한데 문앞에는 들뽕만이 쓸쓸히 서 있구나 서로 만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나그네 옷깃을 적신다)」

 도한 병중에 읊은 시로서「風軟街頭暗綠陽 山堂人靜日偏長 病多身懶饒春睡 藥譜鍼輕共一床(바람은 거리에 부드럽고 햇빛은 검푸른데 적은 방 인적이 고요하여 해만 길고 병든 몸이 괴로워 봄 졸음만 오고 침과 약방문이 한상 위에 놓였도다).

 公의 위 시는 동문선(東文選)에 기록되어 있으며 묘소는 실전되고 있다.

계보 : 9 克敏 - 10 敦 - 11 希甫 - 12 頎 - 13 禧. 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