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3. 15:05

 

 

 

 남 051.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字는 강백(剛伯), 號는 농아(聾啞). 서흥현감(瑞興縣監) 형갑(衡甲)의 아들이고, 신곡(薪谷) 윤계(尹棨)와 임계(林溪) 윤집(尹集)의 동생이다.

 1633년(인조 11) 계유증광사마시(癸酉增廣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로 벼슬할 뜻을 그만두고 자연 속에 살면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글을 강론하였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산속에서 그를 만났는데 이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취향을 가졌다고 술회(述懷)하였다고 한다.

 1644년(인조 22) 10월 13일에 향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김포현(金浦縣) 임촌(林村)에 장사지냈고, 이후 그의 행적을 조정에 아뢰어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증직되었다.

배위는 坡平尹氏이시며 別坐 계득(繼得)의 딸로, 2남 2녀를 두었다.

  인조(仁祖) 11년 (1633) 계유증광시(癸酉增廣試) 진사(進士) 3등(三等) 12위

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