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南原伯派
남 058.
물텀벙
2010. 9. 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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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경수(敬修), 봉사(奉事) 식(湜)의 아들이며 光海君의 장인이시다. 1562년(명종1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5년 호조참판(戶曹參判)이 되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숙소(宿所)에서 실화(失火)하여 문죄(問罪)당했다. 우승지(右承旨)로서 1592년 임진왜란에 왕을 호종, 피난을 갈 때 보산역에 이르러 종묘서제조(宗廟署提調)가 되어 종묘의 신주(神主)를 송도(松都)에 임시로 매혼(埋魂)했다. 형조 참판,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지내고, 1597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공조 판서, 지중추부사, 호조 판서를 지냈다. 1600년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가 죽자 빈전도감(殯殿都監)과 인산도감(因山都監)의 제조(提調)가 되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에 추봉(追封)되시었다. 명종(明宗)17년(1562년), 임술별시(壬戌別試) 병과6(丙科6)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