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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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치장(致章)이다.

 1907년 이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모집, 일본 기병대와 교전하는 한편, 군자금을 모았다. 이 군자금으로 무기와 탄약을 구입하여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복역하고 출감하였다. 사후에 대한민국건국포장을 받았다.

 배위는 昌寧曺氏이시다.

 묘소는 수정구 금토동 산44번지 능안골 파평윤씨 남원백파 선영과 인접한 주택가 내에 정동향하여 있는데, 묘역은 전체적으로 단촐한 느낌이다. 원형의 봉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석과 4각 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에 8각 망주석을 갖추고 있으며, 봉분 좌측에는 백색 화강암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지붕 옥개석이 있다. 1985년 건립하였는데, 봉분 좌측에 북동향하여 백색 화강암제의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의 전후좌 세 면에 비문이 있는데, 앞면에 세로 석 줄로 “愛國志士 南原尹公致章 孺人昌寧曺氏之墓(애국지사 남원윤공치장 유인창녕조씨지묘)”라 새겨져 있다. 묘표 후면에는 공의 약력과 의병활동으로 인해 체포된 후 재판과정의 판결문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 º 대방세가언행록 (帶方世家言行錄 - 윤행임(尹行恁).  성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성남시 2001).

계보 : 29세 泰永 - 30 秉銓 - 31 漢燮 - 32 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