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3. 17:38

 

 

 

 남 066.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字는 성백(成伯), 號는 임계(林溪). 縣監 형갑(衡甲)의 아드님이시다.

 22세에 생원(生員)이 되고, 1631년(인조 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가 되었다,

 1636년 이조정랑(吏曹正郞), 부교리(副校理), 교리(校理)로 있을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화의를 극력 반대했다.

 난 후에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척화론자(斥和論者)로 몰려 청나라에 잡혀가서 갖은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다가 오달제(吳達濟),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심양(瀋陽)의 서문(西門) 밖에서 살해되었다.

 廣州의 현절사(顯節祠), 江華의 충렬사(忠烈祠), 平澤의 포의사(褒義祠), 鴻山의 창렬서원(彰烈書院), 榮川의 장암서원(壯巖書院)에 제향(祭享)되시었다.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시다.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홍익한(洪翼漢)을 조선시대의 三學士라고 한다.

  인조(仁祖)9년(1631년), 신미별시(辛未別試) 을과1(乙科1)

  인조(仁祖) 5년 (162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三等) 26위

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