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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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태조(胎兆), 號는 金剛居士. 정당문학(政堂文學) 언이(彦頤)의 아드님이시다. 문과(文科)에 급제, 의종때 시어사(侍御史)에 이르렀으나 고관의 뜻을 거슬러 좌사 원외랑(左司員外郞)으로 좌천, 1153년(의종 7)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금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기거주(起居注)를 거쳐 형부 시랑(刑部侍郞)으로 서북면 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가 되고, 1169년(의종23)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다. 이듬해 명종이 즉위하자 국자감 대사성(國子監大司成), 참지정사(參知政事). 판병부사(判兵部事)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서 1172년(명종 2) 동북면 병마판사(東北面兵馬判事). 행영병마 겸 중군병마판사(行營兵馬兼中軍兵馬判事)가 되었다. 이듬해 김보당(金甫當)의 난 직후 이의방(李義方)으로부터 주동자의 한 사람이란 의심을 받았으나 유응규(庾應圭)의 도움으로 화를 모면했으며, 이어서 상장군(上將軍)을 겸하고 중방(重房)의 의사(議事)에 참여, 수태사(守太師) 벼슬이 내려졌다. 1174년(명종 4) 서경 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의 난에는 원수(元帥)가 되어 삼군(三軍)을 이끌고 절령에서 반군과 싸워 패퇴(敗退), 다시 기탁성(奇卓城). 진준(陳俊) 등과 출정하여 이듬해 서경을 평정하고 조위총을 벴으며, 전공으로 수충정난강국공신(推忠靖亂匡國功臣). 상주국(上柱國). 감수국사(監修國史)가 되었다. 수태사(守太師).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시었다. 諡號는 문정(文定)이시다. 명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시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