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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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號는 황림(篁林). 中樞府僉使 방(坊)의 아드님이시다.

 公은 조선 정조(正祖) 때 정관치설(井觀痴設) 즉 천인일리학설(天人一理學說)과 통서연의(通書衍義) 잡저(雜著) 등을 저술하였는데 이 무렵 나라에서 전국에 묻혀 있는 학덕있는 선비를 천거하라는 정조대왕의 어명에 따라 울진현령 이병정(李秉鼎)이 공의 행정과 저서 등을 강원감사(江原監司) 윤사국(尹師國)에게 올렸고 감사(監司)는 이 행장과 저서 등을 정리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올렸다.  정조(正祖) 임금이 이 행장과 저서 등을 보고 벽지고을에 이같이 학행이 높고 독실한 선비가 있으니 진실로 기쁘다 하였으며, 이는 한 고을의 어진 선비요 작은 고을의 충신이라 하고 칭찬하고 두차례나 강원감사를 통해 유지(有旨) 즉 답비지(答批旨)를 내리면서 공을 조봉대부(朝奉大夫) 특수(特授) 영동교양관(嶺東敎養官)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강원도로부터 예각(藝閣)에 간행하도록 명령하고 편리한대로 책본을 내각(內閣)에 판각케 하였으며 판각된 수를 계산하여 수장 보관하게 하였다.

 1793년(정종 17년)에 몽천서원(蒙泉書院)에 봉향하였으며 원집(原集) 및 정관치설(井觀痴說) 5권을 간행하여 당시 완각된 목판과 원집(原集) 등 유물을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에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공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유생과 후예들이 1988년(戊辰)에 몽천동(蒙泉洞)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 우측에 신도비를 세웠다.

 배위는 함양오씨이시다.

 묘소는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내성산 後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