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昭靖公派
소 041.
물텀벙
2010. 9. 4. 19:40
소 041.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
字는 덕승(德升), 號는 팔무당(八無堂)이다. 윤언교(尹彦敎)의 아들로 뒤에 윤현교(尹顯敎)에게 입양되었다. 소과에 합격하고 영조 30년(1754 甲戌)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 도승지를 거쳐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전결(田結)을 잘못 보고하여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762년 충청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이산하므로 호서안집사(湖西安集使)가 되어 흩어진 농민들을 안집(安集)하는데 노력하였다. 그 뒤 대사헌. 이조 참판. 이조 판서를 역임하고, 1771년 진주부사로 재임 중에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해에 한성부 좌윤을 거쳐 이어 공조 판서. 평안도 관찰사. 우참찬. 판의금부사를 거쳐 판중추부사로 치사하였다. 글씨에 능하여 80세가 넘어서도 궁중의 서사(書寫)를 맡아 정조로부터 필력이 유건(愈健)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달천사비(達川祠碑). 적전사기적비(赤田社紀蹟碑). 적지기적비(蹟池紀蹟碑). 임경업충렬사비(林慶業忠烈祠碑) 등 당시의 금석문은 그의 손으로 씌어진 것이 많았다. 현재 영정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배위는 풍산홍씨이시며 僉正 重範의 따님이시며. 후배위는 全州李氏이시며 중환(重煥)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龍仁 慕賢面 琶潭 艮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영조(英祖)30년(1754년 갑술), 증광시(增廣試) 갑과3(甲科3)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