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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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명숙(鳴叔), 號는 포암(圃巖), 명원(明遠)의 아드님이시다. 1699년(숙종25)에 생원(生員)이 되고 1705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지평(持平). 사서(司書). 정언(正言). 부수찬(副修撰) 등을 역임, 1713년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었다. 이어 이조 좌랑(吏曹佐郞). 부교리(副校理). 사인(舍人). 응교(應敎) 등을 지내고 승지(承旨)를 거쳐 1719년 대사간에 승진, 이어 우승지에 전직했다가 경종이 즉위하면서 소론(少論)이 집권하자 사직, 은퇴했다. 1725년(영조 1) 승지에 재등용,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고 부제학(副提學)으로 실록도청당상(實錄都廳堂上)을 겸하여, 경종실록(景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예조참판(禮曹參判)이 되었으나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老論)이 숙청당할 때 앞서 1725년 방만규(方萬規)가 탕평(蕩平)을 배척하는 상소문(上疏文)을 올린 일에 관련되어 파직당하고 삭주(朔州)에 유배, 이어 정의(旌義)에 안치(安置)되었다. 1735년 전리(田里)에 방귀(放歸)되었다가 1741년 관직이 복구되어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등용, 1743년 부제학이 되고 이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57년 우빈객(右賓客).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다음해 대제학이 되었다. 문장에 능하여 특히 소차(疏箚)는 명문으로 유명했다. 문집에 포암집(圃巖集)이 있다. 배위는 安東金氏이시며 郡守 당(鏜)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長湍 長西面 三逸里 艮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숙종(肅宗)31년(1705년), 증광시(增廣試) 병과5(丙科5)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