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4. 23:27

 

 

 

 소 132.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字는 양숙(養叔), 號는 죽제(竹齋), 첨정(僉正) 응규(應奎)의 아드님이시다.

 1555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 대교()를 거쳐 1559년 정자(正字)가 되었다. 이어 저작(著作), 박사(博士), 부수찬(副修撰) 등을 지내고 1561년 병조와 이조의 좌랑(佐郞)을 지내셨다.

 1563년 이조 정랑(吏曹正郞)으로 재직중 동료들에게 전선(銓選)에 관한 기밀을 누설한 죄로 파직당했다.

 후에 등용되어 공조와 호조의 참의(參議), 1584년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서 적군을 방어하지 못한 죄로 좌천당했으나 경주가 함락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많은 적병을 죽였다.

 호조참의에 재임된 뒤 1597년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영위사(迎慰使)를 겸하여 명나라 장수를 평양으로 출영나갔다가 객사했다.

 문장과 그림에 능했고, 특히 대(竹)를 잘 그렸다.

 배위는 羅州丁氏이시며 贊成 응두(應斗)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楊州 先山 亥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명종(明宗)10년(1555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1(丙科11)

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