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昭靖公派
소 153.
물텀벙
2010. 9. 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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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경림(景霖), 돈녕부첨정(敦寧府僉正) 회정(懷貞)의 아들이다. 1543년 진사(進士)가 되고, 1552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전적(典籍)을 거쳐 1555년 전라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이어 박사(博士), 수찬(修撰), 정언(正言). 이듬해 황해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1557년 병조 좌랑(兵曹佐郞)에 재직중 이양(李樑)에게 아부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 1562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다시 기용되고, 영평현령(永平縣令). 한산군수(韓山郡守)를 거쳐 1566년 사성(司成)으로 지제교(知製敎)를 겸했으며, 그 뒤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었을 때도 사관(史官)의 직책을 겸했다. 장령(掌令), 집의(執義), 동래 부사(東萊府使) 등을 거쳐 1568년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내고, 이듬해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어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겸임했다. 배위는 東萊鄭氏이시며 掌寧 희등(希登)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松山이며 簡易 崔岦의 撰碣이 있다. 명종(明宗)7년(1552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3(丙科13)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