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太尉公派
태 010.
물텀벙
2010. 9. 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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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자일(子一), 지선(止善)의 아들이다. 1657년(효종 8) 진사(進士)가 되고 1663년(현종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성균관(成均館)에 보직된 뒤 지평(持平).장령(掌令)을 역임했다. 1674년(숙종 즉위) 서인(西人)으로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 서인이 몰락하자 파직당한 뒤 고향에 은퇴했다가 점차 서인이 집권하게 되어 1677년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기용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추방당하자 장령(掌令)에 오르고 형조좌랑(刑曹佐郞).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역임,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國)으로 다시 서인이 실각하자 삭직(削職)당해 양주에 은거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1694년 강릉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출사하지 않았다. 배위는 興陽李氏이시며 의윤(義胤)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杜川 孝成公墓前 小左 乙原에 모셨다. 寒水齋 權尙夏의 撰碑가 있다. 배묘는 동 左邊 40步에 모셨다. 현종(顯宗)4년(1663년), 식년시(式年試) 을과6(乙科6). 字 자일(子一). 효종(孝宗) 8년 (165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48위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