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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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字는 중길(仲吉), 號는 둔정(鈍靜), 만회(晩晦), 부윤(府尹) 이(理)의 아드님이시다.

  1690년(숙종1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1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숭릉(崇陵) 직장(直長)이 되고, 1714년 지평(持平)을 거쳐 필선(弼善). 장령(掌令). 헌납(獻納).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719년 사간(司諫). 집의(執義) 등을 지냈다. 이듬해 사간에 재임되고 동부 승지(同副承旨)를 지내고,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나갔다가 1722년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소론(少論)이 집권하자 사직하고 은퇴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老論)이 재집권하자 판결사(判決事)로 기용, 참찬관(參贊官)을 겸하고,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문견록(聞見錄)이 있다.

 배위는 文化柳氏이시며 后配位는 南陽洪氏이시며 僉樞 수(璲)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楊州 東面 茂林山 酉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后配位 墓所는 艮原이다.

  숙종(肅宗)36년(1710년), 증광시(增廣試) 갑과2(甲科2).

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