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 2010. 9. 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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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字는 희점(希點). 호는 한송(寒松). 찬성공 계흥(繼興)의 아드님이시고,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 윤돈(尹惇)의 손자이시다.
 1456년(세조 2) 병자식년사마시(丙子式年司馬試)에 진사로 합격하였고 1466년(세조 12) 병술고성별시문과(丙戌高城別試文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제수되었다. 그 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를 거쳐 사간원정원(司諫院正言), 예조정랑, 형조좌랑, 진주판관, 공조정랑,안악군수,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을 역임했다. 다시 사간원으로 들어가 사도시정(司導寺正), 해주목사, 통례원 우통례(通禮院 右通禮)를 제수 받았다.
 성품이 온화하고 거문고, 바둑, 책, 그림을 즐겼다. 글 솜씨가 뛰어나서 오랫동안 승문원에 재직하였고 사가(史家)로서 갖추어야 할 재지(才智), 학문, 식견(識見)을 지니고 있어 사직(史職)을 겸하였다.
 1503년(연산군 9) 10월 69세로 세상을 떠나
양주군(楊州郡) 송산리(松山里)에 묻혔는데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로 그의 시신이 파헤쳐져 목을 베이는 참상(慘狀)을 겪었다. 중종 즉위 후,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차남 동래현령(東萊縣令) 윤인복(尹仁復)이 왜놈을 지킨 종훈(從勳)으로 參判에 가증(加贈)되었다.

 배위는 淸州慶氏이시며 參判  여(餘)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교리공(惇) 묘소의 右側 乙原에 쌍분으로 모셨다.

  세조(世祖)12년(1466년), 병술별시(丙戌別試) 병과 3(丙科 3).  字 희점(希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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