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版圖公派
판 093.
물텀벙
2010. 9. 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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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지중(止中), 號는 월담(月潭), 初名은 의립(義立), 判書 선각(先覺 : 國馨)의 아들이다. 1594년(선조2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에 등용되어 설서(說書)를 겸했다.정자(正字)로 재직중인 1624년 조카(성명 미상)가 이괄(李适)의 난에 가담하여 처형된 뒤부터 벼슬을 그만두었다가 1626년 경주부윤(慶州府尹)이 되고, 이어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刑曹參判)을 거쳐 함경도. 충청도. 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형조판서.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림과 글씨에 능했고 특히 그림은 산수화(山水畵)를 잘 그려 이름이 높았다. 유작으로 산수화첩(山水怜帖)이 있으며 저서는 야언통재(野言通載)와 산가청사(山家淸事)를 남겼다. 배위는 竹山朴氏이시며 文正公 문영(文榮)의 따님이시다. 후배위는 草溪鄭氏이시며 牧使 흡(熻)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積城 庚申洞 壬原에 모셨다. 선조(宣祖)27년(1594년), 별시(別試) 병과1(丙科1)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