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版圖公派
판 096.
물텀벙
2010. 9. 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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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여즙(汝楫), 贈判書 세징(世徵)의 아드님이다. 1663년(현종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676년(숙종 2)에 의주 부윤(義州府尹), 강화유수, 공청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2년 진하진주 겸 사은부사(進賀陳奏兼謝恩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거쳐 경기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남인으로 어영대장(御營大將)에 올랐다. 이어 한성부(漢城府)의 좌, 우윤(左右尹), 판윤(判尹) 등을 거쳐 형조 판서에 올라 1691년 원접사(遠接使)로서 청나라 사신을 맞았다. 이어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 우참찬(右參贊)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남인(南人)이 축출당하자 삭탈관직 된 뒤 문외출송(門外出送)되어 향리 포천에 은거하였다가 1697년 풀려나왔다. 세 번이나 도백을 지내고 다년간 병마권을 잡았으나 항상 청백하여 집에는 담장이 없었고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하여 당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화를 입지않았다. 耆老社에 들어갔다. 배위는 晉州柳氏이며 應敎 영(穎)의 따님이시다. 후배위는 全州李氏이며 豊海君 잠(潛)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先山 丑原에 三合葬으로 모셨다. 松谷 李瑞雨의 撰碑가 있다. 현종(顯宗)4년(1663년), 식년시(式年試) 을과7(乙科7)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