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3 (2/1)
화보 3 (2/1) |
6.25전쟁 화보입니다. |
누나와 업힌 남동생. 1951년 6월 9일.
미군병사가 뒤로 손이 묶인체 사살된 채 발견되었다.
미해병의 탱크가 포로를 잡고있는 육군을 지원하고 있다.
신병 훈련소로 향하는 기차에 칸막이도 없이 노출된 채 앉아있는 징집병들. 1950년 7월.
헬기 착륙지점에 부상자를 옮길 들 것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의 탱크 운전병이 부서진 탱크와 함께 죽어있다. 1950년 8월 13일이며 장소는 안동이다.
B-29 98대가 북한이 집결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지역에 총 850톤의 재래식 폭탄을 집중 투하하고 있다. 1950년 8월 16일.
해군의 AD-3 급강하 폭격기가 2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하고있다. 사진의 장소는 신의주에서 북한과 만주를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이며 왼쪽이 북한 지역이다. 달 분화구 같은 많은 폭파구가 보인다.
임시로 설정된 미군의 작전 지휘소. 이를 볏단으로 위장하고 경계를 서고있는 미군이 이채롭다.
1950년 8월 사진으로 한창 후퇴를 거듭하던 시기인듯하다. 마을이 불타고있는것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것.
미군이 낙동강 후방지역을 공격하여 두명의 북한군 포로를 잡았다. 1950.년 8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4척의 상륙함이 전투 물자를 하역하고있다.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 지휘관 맥아더 장군. 9월 15일.
1950년 9월 30일의 대전 시가지.
미군의 수색 작업중 북한군 포로. 1950년 11월 16일. 북한 지역.
전쟁지역에서 수술.
서울 수복작전중인 국군과 미군.
약 400여구의 시체가 대전 교도소에서 발견되었다.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교도소에 수감했던 국군포로, 민간등을 모두 학살하였던 것이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후 폐허속의 생존자와 죽은자.
1950년 10월 북한 지역을 회복하기 위한 미군의 C-119를 이용한 공수작전.
북한의 숙천과 선천 지역이라고 표기하고있다. 대규모 공수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지역 변두리에서 미군이 탱크를 앞세워 북한의 북한 동조자들을 소탕하고있다. 1950년 10월.
장소는 불명확하나 많은 격전이있었던 931미터 고지. 항공촬영을 통해 북한이 파놓은 정교한 참호를 볼수있다. 그리고 많은 포화와 항공폭격으로 나무는 거의 다 죽어 버렸다.
1950년 10월 금봉산의 공산에서 발견된 60여구의 민간인 시체.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