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윤언민 묘지명문(尹彥旼 墓誌銘文)
20. 윤언민 묘지명문(尹彥旼 墓誌銘文) |
윤언민(尹彦旼 : 1095~1154)은 고려의 명신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의 아들로, 어머니 경원군부인(慶源郡夫人) 이씨(李氏)는 검교태자소보(檢校太子少保) 이성간(李成幹)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가 봉선고판관 내고부사 시예빈주부(奉先庫判官
內庫副使 試禮賓主簿),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 시전중내급사(試殿中內給事), 성주방어사(成州防禦使), 광주목부사(廣州牧副使),
시공부낭중(試工部郎中), 시대복소경(試大僕少卿)을 거쳐 안서대도호부사(安西大都護府使)가 되었다. 묘지명은 문림랑 전감찰어사(文林郎 前監察御史) 방입기(邦立基)가 짓고, 글씨는 문인(門人)인 승려 호심초당(湖心草堂) 계휴(繼休)가 썼다. 묘지명의 말미에 처 경원군부인 이씨(慶源郡夫人 李氏)와 합장(合葬)한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윤언민이 작고한지 20년 뒤에 부인이 별세하자 부인을 합장하면서 그 내용을 윤언민의 묘지의 말미에 추기(追記)한 것이다. |
卒內侍檢校戶部尙書試大僕少卿尹公墓誌銘 |
돌아가신 내시 검교호부상서 시대복소경(內侍 檢校戶部尙書 試大僕少卿)
윤공(尹公) 묘지명 (뒷면) 향을 사르고 숨을 거두었는데, 죽음을 보기를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며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향년
60세이고, 그 용모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 뒤 ▨ 평생 더불어 지낸 도가(道家)와 석가(釋家)의 고류(高流)들이 모두 앞에 나와 분향하고
예를 바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