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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덕요(德耀)이고, 號는 팔송당(八松堂). 參判公 윤창세(尹昌世)의 아들이다. 성혼(成渾)의 사위로서 성혼(成渾) 학통(學統)을 이었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급제 정자(正子). 전적(典籍). 감찰(監察). 정언(正言). 좌랑(佐郞)을 역임. 수원(水原). 북청(北靑)의 판관(判官)과 영광군수(靈光郡守)를 지냈다. 1616년 대북파(大北派)의 탄핵을 받아 은거 생활을 하였으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복직되어 장령(掌令). 이조참의(吏曹參議). 전주부윤(全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 부응교(副應敎)로서 이괄의 난 때 검찰사(檢察使)로 있던 이귀(李貴)가 임진강 싸움에서 패한 죄를 탄핵하였다.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때 척화를 주장하였는데, 후에 상소문의 구절로 인해 부제학 전식(全湜)의 탄핵을 받아 永同에 유배되었다가 풀려 이산에 은거 중에 죽었다. 領議政에 追贈되시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시다. 저서로는 팔송봉사(八松封事)가 있다. 배위는 昌原成氏이시며 牛溪 혼(渾)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長久洞 卯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市南 兪棨의 撰碑가 있다.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영동(永同)의 초강서원(草江書院)에 배향되었다. 선조(宣祖)30년(1597년), 알성시(謁聖試) 을과1(乙科1)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