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220.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
昭靖公의 장남으로 原從功臣으로 도감부사상호군(都監副使上護軍)에 제수되시었으나 공의 성품이 약관시절부터 벼슬에 뜻이 없었다. 태종 9년(1409)에 중부이신 原平君의 오사로 광주(廣州)로 귀양가셨다가 3년후인 壬辰年에 풀리어 돌아오신후 壬寅年 아버님 昭靖公의 상사를 당한 이후 더욱 상심을 하시어 벼슬을 버리고 전야(田野)로 돌아가시어 밭갈이를 하면서 항상 자손들에게 훈계하시되 "벼슬이나 科擧에 뜻을 두지말고 힘써 농사를 지어 自給自足하며 살도록 전허라" 하시고 6월 9일에 세상을 하직하셨다. 배위는 漢陽趙氏로서 漢川府院君 온(溫)의 따님이시고 그 조부는 인벽(仁璧)이시다. 묘소는 積城治南巖苔井壬原에 合葬하였으며 短表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