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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존중(存中), 號는 우천(牛川), 판서(判書) 국형(國馨)의 아들이시다. 1585년(선조18) 진사(進士)가 되고, 1588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 권지정자(承文院 權知正字)가 되었다가 이듬해 정여립(鄭汝立)과 친분이 있다 하여 한때 파직되었다. 뒤에 검열(檢閱)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로서 관량어사(管糧御史), 독운어사(督運御史)를 지내며 군량 공급에 공을 세워 1594년 부찬(副撰)에 올랐다. 그 후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어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지제교(知製敎)를 겸했고, 사예(司藝), 응교(應敎), 사인(舍人), 집의(執義), 사간(司諫),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다. 뒤에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청주(淸州), 황주(黃州)의 목사(牧使), 판결사(判決事) 등을 지내고, 1609년 병조참의(兵曹參議)가 되었다. 배위는 慶州李氏이시며 郡守 호약(好約)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先山 戌原에 雙墳으로 모셨다. 東洲 李敏求의 撰碣이 있다. 선조(宣祖) 21년(1588년), 알성시(謁聖試) 병과9(丙科9). 자(字) 존중(存中).호(號) 우천(牛川). 선조(宣祖) 18년(1585년),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三等) 4위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