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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익지(益之), 부원군(府院君) 사흔(士昕)의 아들이다. 1457년(세조 3) 음보(蔭補)로 세자우참군(世子右參軍)이 되고, 호조정랑(戶曹正郞), 의빈부경력(儀賓府經歷)으로 선전관(宣傳官)을 겸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올랐다. 1468년 남이(南怡), 강순(康純) 등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데 참여,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으로 영평군(鈴平君)에 봉해졌다. 1469년 좌승지(左承旨) 호조참판(戶曹參判)를 거쳐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봉해졌고,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경기도 관찰사를 겸임했다. 正憲大夫에 오르고, 大司憲, 刑曹判書, 慶尙道觀察使, 1481년 공조판서가 되었다. 시호(諡號)는 공양(恭襄)이시다. 배위는 金海金氏이시며 校理 진손(震孫)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先山 庚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承旨 孫比長의 撰碑가 있다.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