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未詳 派

미 017.

물텀벙 2010. 9. 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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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領敦寧府使 윤여필(尹汝弼)의 따님이시다.

 1491년(성종 22)에 호현방(好賢坊-서울의 옛 행정구역) 사제(私第)에서 태어나 고모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부인에 의하여 양육되시었다.

 1506년에 대궐에 들어가 처음 숙의(淑儀)에 봉하여지고.

 중종의 장인인 신수근(愼守勤)이 반정모의에 반대한 일로 살해된 뒤 1507년(중종 2)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가 폐위되자 1507년 왕비로 책봉되시었다.

 1515년 2월에 세자(世子 : 인종)를 낳은 뒤 그 산후병으로 엿새 만에 경복궁 별전(別殿)에서 타계하셨다.

 휘호(徽號)는 숙신명혜(淑愼明惠)이며, 1547년(명종 2)에 선소의숙(宣昭懿淑)이라 추상되었다.
 1남1녀를 두시었다. 諡號는 장경(章敬), 陵號는
희릉(禧陵)이다.

 

  참고

 端敬王后  1487(성종 18)~1557(명종 12).

본관은 거창. 좌의정을 지낸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수근(愼守勤)의 딸이다. 1499년(연산군 5) 성종의 둘째아들 진성대군(晉城大君)과 혼인하여 부부인(府夫人)에 책봉되었다. 1506년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이 연산군을 내쫓고 진성대군을 중종으로 추대하면서 왕후에 올랐다. 그러나 반정모의에 반대했던 아버지가 성희안 등에게 살해되자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7일 만에 폐위되어 본가로 쫓겨났다. 1515년(중종 10)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의 죽음을 계기로 김정(金淨)·박상(朴祥) 등이 복위운동을 펼쳤으나 이행(李荇), 권민수(權敏手) 등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식은 없고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었다. 陵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온릉(溫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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