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未詳 派

미 019.

물텀벙 2010. 9. 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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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제28대 충혜왕의 제2비(妣)이시다.

 찬성사(贊成事) 윤계종(尹繼宗)의 따님이시며, 충정왕의 어머니이시다.
 
충혜왕이 죽은 뒤 덕녕공주(德寧公主) 소생 왕자인 충목왕이 즉위하였으나 재위 4년 만에 12세의 나이로 죽자, 윤씨일족은 희비가 낳은 충혜왕의 서자 저(
- 몽고명은 迷思監朶兒只)를 왕으로 추대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충정왕 즉위 후 희비에게는 경순부(敬順府)를 설치하고 승(丞), 주부(注簿) 각 1인과 사인(舍人) 2인을 두어 지위가 격상되었으나 충정왕이 재위 3년 만에 원나라의 압력으로 왕위에서 물러나 강화도에 안치되어 있을 때는 식사공급도 충분하지 못하고 모자간의 내왕조차 끊어지는 곤경을 치렀으며, 공민왕에게 청하여 겨우 며칠간 아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행동 전반에 많은 규제를 받았다.
 
공양왕 때 와서 예관(禮官)의 건의를 받아들여 왕후의 예에 준하여 기제(忌祭)와 진전제(眞殿祭)를 거행하도록 하는 조처가 내려졌다.

 

  참고

 충정왕 (忠定王 : 1337 - 1352)

 휘 저(胝). 시호 충정(). 충혜왕의 서자이다. 어머니는 찬성()윤계종()의 딸 희비(). 1348년(충목왕 4) 경창부원군()에 책봉되고, 같은 해에 충목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1349년 원()나라로부터 왕으로 책봉되어 7월에 즉위하였다. 외척 윤시우()와 배전() 등이 세도를 부려 기강이 해지고, 밖으로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국정이 문란하였다.

 이때 충정왕과 함께 충목왕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던 강릉대군(:)에게로 민심이 쏠리자, 1351년 윤택(), 이승로() 등이, “충정왕은 나이 어려 국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폐위시켜 달라”고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그는 강화도로 추방되었다가 다음해에 독살되었다.

 능은 총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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