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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소(牛), 반복되는 슬픔 - 具瑩

물텀벙 2011. 4. 23. 10:04

 

                                                          

 

    소(牛), 반복되는 슬픔 - 具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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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姓憂灾疫 (만성우재역) 재앙 같은 돌림병을 만백성이 근심하니

千牛病勢同 (천우병세동) 수천 마리 소가 같은 병에 걸렸네

豈徒遍湖右 (기도편호우) 어찌 호서에만 가득 퍼진 것이랴

傳道自遼東 (전도자료동) 요동에서 옮아왔다 말들 하네

藥物無神效 (약물무신효) 약물로도 신통한 효력이 없으니

寃氛化白虹 (원분화백홍) 원통한 기운이 흰 무지개로 뻗쳤네

村童舊牧笛 (촌동구목적) 시골 목동의 옛 피리소리는

不復弄溪風 (불부롱계풍) 시내바람 살랑대도 더는 들리지 않네

  구영(具瑩 1584∼1663)의 죽유시집(竹牖詩集) 중 여수(汝守)의 소 전염병 시에 차운하다.(次汝守牛疫韻)에서.

 

구영(具瑩 1584∼1663)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영연(瑩然), 호는 죽유(竹牖). 위(煒)의 동생이며,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이때 폐모논의(廢母論議)가 일어나자 전주의 유응원(柳鷹元)이라는 자가 이에 찬동하는 통문을 그에게 보냈다. 분연히 고산현(高山縣) 향교의 제생(諸生)들과 더불어 반대의 항장(抗章)을 지어 이를 배척하고 유응원의 통문을 불살랐다.
인조반정 후
고산현감이 유일(遺逸)로 천거하려 하였으나 극력 사양하였고, 1626년(인조 4) 처음으로 활인서 별좌를 배수받았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강화로 대가(大駕)를 옮기려 하자 유태형(柳泰亨)과 더불어 묘당에서 부당함을 역설하여 그치게 하였으며, 곧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예하의 호소부사(號召副使)가 되었다.
1628년 사도시 직장으로 승차되었다가 곧 그 직에서 물러났으나, 호종공신(扈從功臣)에 녹공되어
사과(司果)가 되었으며, 1644년 다시 별좌, 감찰을 거쳐 회인현감(懷仁縣監)을 지냈다.

 

 

 

소(牛), 반복되는 슬픔

지난겨울, 국가의 축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설 정도로

온 나라가 구제역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베트남에 갔다 와서 병을 옮겼다고 하여

안동의 한 농장주는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임에도 전염을 걱정하여

고향에서는 외지 사람의 방문을 막는 금줄이 쳐졌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돼지를 산채로 묻고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기원하며

농장주들은 한없이 울었다.

안락사 주사를 맞은 어미 소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버티고 서서

새끼에게 젖을 다 먹인 다음 죽어갔다는 소식에

국민들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런데 또 구제역이 또 다시 홍역을 부른다.

 

수백 년 전 인조 때의 시 한 편이

오늘날의 상황을 그대로 그린 듯하다.

농부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과장되게 묘사하지 않고

목동의 피리소리가 끊어진 것으로 표현한 절제미가

더욱 많은 여운을 준다.

                         고전포럼   권경열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