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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경인(景仁). 호는 기재(棄齋), 정랑 정(正郞 霆)公의 아드님이시다. 1539년(중종3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장령(掌令). 판교(判校). 예조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하고, 1547년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양구에 부처되었다. 이때 관문에 출입하였다 하여 형문(刑問)을 받고 1549년 강진(康津)에 귀양갔다가 1565년 파주(坡州)에 양이(量移)되었다. 1567년에 풀려나와, 다시 판교를 지냈다. 윤원형(尹元衡)의 비행을 논하다가 화를 입게 되었는데, 평소 직언을 잘하였다고 한다. 중종(中宗)34년(1539년), 기해별시(己亥別試) 병과2(丙科2) 계보 : 16 譓 - 17 思深 - 18 霆 - 19 - 剛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