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인물/南原伯派

남 096.

물텀벙 2010. 9.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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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字는 유경(有慶), 號는 추계(湫溪). 郡守 처관(處寬)의 아들님이시다.

 1450년에 생원, 145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등용되어 저작. 박사를 거쳐 전농주부(典農主簿), 1457년 문과중시에 급제하고 우헌납(右獻納)에 특진되었다.

 예조 정랑. 사예. 검상. 사인 등을 역임하고 부모 봉양을 위하여 장흥부사(長興府使)로 나갔다.

 1468년 훈련원부정(副正), 1470년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가 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 오례의주(五禮儀注)를 수찬하였다. 이어서 호조. 예조의 참의를 역임하였다.

 어머니 봉양을 위해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나갔다가 치적을 올리고 이어서 공조. 형조. 이조의 참판,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1478년 한성부우윤, 대사헌에 올랐다.

 1489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어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이 되었으나 부모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감에 특히 나주(羅州) 목사를 제수받았다.

 동지중추부사로 세자 우빈객(右賓客)을 겸임, 1491년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경상도 양전순찰사(量田巡察使)가 되고 한성부 좌윤, 형조판서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으로 동지성균관사. 도총부(都摠府) 도총관. 지의금부사. 지춘추관사 등을 겸직,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戊午史禍)로 한때 파직되었다.

 1499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이 되고 우참찬을 거쳐 1500년 기로소(耆老所)에 들고 1503년 좌참찬에 이르러 73세에 졸 하셨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남원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다.

  단종(端宗)1년(1453년), 을사식년시(乙巳式年試) 병과3(丙科3)

  세조(世祖)3년(1457년), 중시(重試) 병과5(丙科5)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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