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005.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
字는 지화(之和) 號는 삼족당(三足堂). 憂菴 시형(時衡)의 아드님이시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탁월하여 先考의 博學을 傳受하여 일취월장하셨으며 8세에 이미 詩學에 通視하여 大義를 깨달았으며 모든 언어행동은 물론 예절에 밝았으며 事親凡節에서 극진히 공경하였다. 이에 孝子錄에 "時衡子護軍母病斷指世稱孝子"로 기록되어 있다. 선고께서는 효행이 지극하시며 또한 효종대왕에게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임금께서 친히 내리신 御批答을 받음으로서 孝行錄에 "夢說子野城君赫14世孫生員性孝母病斷指孝朝萬言疏論時務蒙優批享蒙泉書院"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先考의 學德과 효성의 뜻을 이어 肅宗 4년(1678 戊午)에 公께서 정치의 부패와 민생고를 열거하시고 그 匡正策으로 "國家便宜十七條"를 지어 疏를 올려 숙종대왕께서 그 疏를 보시고 感賞히 여기시고 비(批)를 내리셨다. 이로써 鄕中儒林에서 世傳忠孝의 집이라 稱頌하였다. 公의 享壽 70세에 壽職으로 副護軍의 敎旨를 받았다. 이와 같은 治積과 孝行은 先代부터 이어받은 家風이며 또한 學文과 효성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