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006.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
고려 27대 忠肅王의 부마(사위)로서 判書公 이(莅)의 막내 아드님이시다. 관작이 金紫光祿大夫이셨으며 野城君에 봉함을 받으시고 식읍지(食邑地)인 궁허촌(영덕군 달산면 용평동)에 궁궐 같은 저택을 짓고 백성들에게 바르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셨다. 조선 開國 후 고려 왕실의 인척을 모조리 잡아 살육할 때 공의 후손들이 피신하며 사셨기 때문에 한 때 계보를 알지 못하여 공을 시조로 삼아 野城으로 본관을 쓰다가 계대(系代)가 확인되어 1863년 坡平으로 환본하였다. 公은 궁촌(宮村)이라 불리었던 영덕군 달산면 용평동에서 우민선처하시면서 사시다가 개경에 올라가시지 않고 여생을 보내시다 영면하시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