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122. 이 글에 이의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 주세요. |
字는 천종(天縱), 號는 봉계(鳳溪). 贈吏曹判書 원거(元擧)의 아드님이시다. 선거(宣擧)와 재종형인 증(拯)에게서 수학하였다. 1681년(숙종 7) 진사시에 합격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고, 이어 선공감부봉사(繕工監副奉事)를 지냈다. 1689년 의금부도사에 재직중 제주도에 갔다가 당시 그곳에 유배되어 있던 김진구(金鎭龜)를 만난 일이 화근이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1696년 다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에 임명되었다. 양성현감으로 재직중 흉년이 들자 창고를 털어 빈민을 구제하는 한편, 풍속을 교화하였다. 1706년 다시 의금부에 재직하였고 이어 공조정랑을 지냈다. 문의현령으로 있으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고 무명세(無名稅)를 전부 폐지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항상 서민들 편에서 정책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토호의 모함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양성과 자연을 벗하는 생활을 하였다. 저서로 鳳溪集 2권 1책이 있다. 배위는 삭령최씨이며 거옹(擧翁)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高山雲東面龍溪里天燈山南亥原에 合葬으로 모셨으며 族曾孫 光紹가 撰狀하고 左相李相璜撰한 碑가 있다.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