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鈴平君 陟의 다섯째 아드님이시다.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오르고 정3품직인 版圖判書를 지냈다. 이후 고려가 망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는 충신들은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절조를 지켰다. 이때 파평산에 들어가 吉再 등과 함께 고려를 그리워하면서 노후를 보냈다고 전한다.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후에 손녀인 번(璠)의 딸이 세조비 貞熹王后로 책봉됨에 따라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또한 손자인 恭簡公 炯이 佐翼功臣에 책훈되어 순충보조공신에 추증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그 후손들 중에서 많은 고관대작과 학자가 배출되어 집안이 크게 번창하였다. 시호는 文忠이시다. 배위는 慶安宅主 昌寧成氏이시며 侍中 文靖公 여완(汝完)의 따님이시며. 후배위는 慶安宅主 安東權氏이시며 知密直 항(恒)의 따님이시다. 묘소는 文顯公墓 左 仝原이며 短表가 있다. 前配墓는 鈴平君墓 右則이며 后配墓는 交河 聖齋井洞 酉原에 모셨으며 短表가 있다. 계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