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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현통(玄通), 號는 징암(懲庵). 參判 집(鏶)의 아들이다. 166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가 되고 부교리(副校理). 부수찬(副修撰). 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쳐서 1674년 대사간에 올랐다. 다음해 경기도 관찰사, 개성유수를 지냈다. 1677년에는 과거 시험관으로서 문제를 잘못 냈다는 이유로 한때 연안에 유배된 바 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國)으로 서인(西人)이 추방당하자 공조판서로 기용되고, 이어 병조판서를 거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예서에 뛰어났으며 부평의 행풍덕군수 권신중갈(權信中碣) 장단의 호조 판서 이명비(李溟碑) 양주의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정효준비(鄭孝俊碑), 청주의 보살사중수비 춘천의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비(金佑明碑) 등을 썼다. 配위는 恩津宋氏이시며 판관(判官) 석복(錫福)의 따님이시다. 墓소는 胎峯 先山下 乾原에 合葬으로 모셨다. 아들 휘정(彙貞)의 撰誌表가 있다. 현종(顯宗)1년(1660년), 증광시(增廣試) 갑과3(甲科3) 현종(顯宗) 1년 (1660) 경자(庚子) 증광시(增廣試) 진사(進士) 1등(一等) 3위 계보 : |